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 본토 공습 (문단 편집) == 결과 == [youtube(O5xJwnjTfHA)] 필리핀 탈환 이후 일본의 패배는 기정사실이었으나 일본에 대한 대대적인 폭격은 '''전쟁의 끝을 최소 1년 이상 앞당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은 남방 점령지와 본토가 유리(분리)되자 온갖 똥철을 긁어모으고 비축자원을 쏟아부으며 발악에 나섰지만 대규모 폭격으로 산업시설을 모조리 날려먹었다. 그리고 산업시설에서 일할 노동자들 다수가 죽거나 다치고, 생존자들도 겁에 질려 시골로 피난길에 떠났다. 이처럼 폭격받은 주요 도시 시민들은 '''이 전쟁은 뭔 짓을 해도 이길 수가 없다'''는 걸 처절히 깨달았다. 왜 도시 한정이냐면, 미군의 폭격을 받지 못한 외딴 동네에서는 항복 이후에도 '싸울 수 있는데 왜 항복하나요!' 하는 분위기가 실제로 존재했기 때문. 대표적으로 1945년 8월 하순에 있었던 [[마츠에 소요 사건]]이 있다. 마츠에 소요 사건이 벌어진 [[시마네현]]의 경우는 폭격할 가치도 없어서 그냥 건너 뛴 경우라 전쟁 의지가 여전했다. 이처럼 전쟁의 참화를 느끼지 못하는 쪽은 아무리 전세가 불리해져도 항복에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1차 대전 직후 독일의 여론이 그 예. 군부도 마찬가지였는데, 본토의 일본군은 대부분 항복의 불가피함을 인정한 반면, 남방 점령지의 일본군 지휘관들은 아직 부대도 멀쩡하고 싸울 수 있는데 왜 항복하냐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일본군은 본토와 국민들을 지켜내지도 못했고, 오히려 황거까지 폭격받음에도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참고로 황거 폭격은 우연이었고, 오히려 미국은 발악하는 일본을 괜히 더 자극할까 싶어 황거 폭격을 금지했다. 이렇듯 미군은 전쟁 도중에도 [[쇼와 덴노]]의 안위를 보호해주었다. 그러므로 이른바 [[옥음방송]]으로 알려진 항복방송 당시 군부나 일반 국민들이나 큰 반발 없이 항복을 받아들인 것도 계속된 전략폭격에 따른 패배감에 기인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